표절죄, 세줄소설 아티클
대중은 ‘도둑’이라 손가락질하지만, 법은 ‘무죄’라며 면죄부를 주는 기이한 범죄를 아십니까?
대중문화계에서 심심치 않게 터지는 표절 시비를 볼 때마다 대중은 분노한다. 음을 똑같이 복사해 붙여넣은 듯한 노래, 문장을 그대로 훔쳐온 듯한 글을 보며 “저건 명백한 죄”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법정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이 거센 분노는 맥없이 힘을 잃는다. 법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적 의미의 ‘표절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에서 저작권 침해는 철저하게 ‘집안싸움’으로 취급된다. 형사적으로는 친고죄, 민사적으로는 당사자 소송의 원칙을 따른다. 즉, 피해를 입은 원작자가 직접 법원에 걸어 들어가 “저 사람이 내 권리를 침해했으니 처벌해 달라”고 도장을 찍어 소장을 제출해야만 비로소 법적인 ‘죄’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대중이 “저것은 표절”이라고 확신하며 확성기를 대고 외쳐도, 제3자는 고발할 권리조차 없다.
이 맹점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풍경이 바로 한국 가요계의 역사다. 1989년 변진섭이 부른 윤상 작곡의 〈로라〉와 1990년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는 일본 가수 사이토 유키(斉藤由貴)의 〈정열(情熱)〉(1985)과 당시 일본의 유명 퓨전 재즈 밴드 카시오페아(Casiopea)의 ‘Me Espere’(1987)곡과 멜로디, 전개, 코드 진행이 흡사해 거센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청중의 귀에는 빼도 박도 못할 ‘카피’였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법적으로 이 곡들은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합법적인 명곡으로 소비된다. 원작자가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 미개방이라는 시대적 특수성 속에서 원곡자들은 한국에서의 도용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공식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원작자의 무대응은 가해자에게 법적으론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한다. 법이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겨둔 탓이다. 침묵하는 원작자 뒤에 숨은 표절작들은 사후 합의나 저작권료 분배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꼬리를 자르며 합법의 영역에 생존한다.
결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원작자가 침묵하면 표절은 죄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그러나 법이 무죄라고 해서 도덕적 면죄부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기억과 기록은 법전보다 길며, 창작자의 양심을 속인 대가는 법적 처벌이 아닌 ‘신뢰의 파산’이라는 형태로 꼬리표를 달기 때문이다. 법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눈과 귀를 열고 있는 대중의 엄격한 시선과 수준 높은 정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