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때기, 세줄소설 아티클
증세 밑밥 쇼
국가의 백년대계인 세금 제도를 다루는 정치권의 문법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는 소통이라는 가면을 쓴 정교한 정치적 연출이자 명백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의 완결판이었다.
진짜 토론을 할 목적이었다면 날카로운 현장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을 전면에 불러놓고 송곳 검증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오른 것은 맘카페 회원이나 유튜버 등 누군지도 모르는 평범한 국민들이었고 오고 가는 대화는 본질을 비껴간 감성적 문답뿐이다.
까다로운 학술적 비판과 조세 전가의 부작용을 회피하기 위해 비전문가인 대중을 방패막이로 삼은 꼴이니, 시장에서 사기꾼 쇼이자 본성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시간 댓글 창이 정책 검증 대신 혐오와 비방으로 얼룩지는 현상 역시 객관적 데이터 없이 감정에만 호소한 토론이 낳은 필연적 분열이다.이 연출의 가장 음흉한 지점은 예상대로 보유세라는 단어의 반복 노출과 가스라이팅에 있었다.
이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려면 최하 3배는 올려야 한다.”라거나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로 동의한다.”라며 본격적인 증세의 본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장 3배를 올리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척 엄살을 부렸지만, 이는 도리어 “보유세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정해두고 대중의 거부감을 낮추려는 전형적인 군불 때기 수법이다.
“선진국에 비해 보유세가 낮다.”는 단편적인 통계 착시만 주입할 뿐, 한국의 거래세와 양도세가 이미 세계 최상위권이라는 본질은 철저히 은폐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형을 보면 한국의 종합부동산세 체계는 지극히 이례적이고 기형적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정통 선진국에는 한국처럼 부동산을 가만히 쥐고만 있다는 이유로 국가가 매년 누진세 폭탄을 때리는 부동산 부유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부유세가 아예 없으며, 오직 지방정부가 공공 서비스를 위해 집값에 비례한 단일세율의 재산세만 걷는다.
일본은 1950년 슘 사절단(Shoup Mission)의 권고로 순자산세를 도입했다가, 자본 도피와 행정 마비라는 뼈아픈 실패를 겪고 1953년 3년 만에 법에서 지워버렸다. 영국 역시 수백억 원짜리 저택에 살더라도 지방세(카운슬 택스) 상한 구간을 꽉 막아두어 담세력 부족 문제를 피해 간다.
심지어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조차도 2007년 부유세를, 2008년에는 누진적 구조의 국세 재산세(fastighetsskatt)를 폐지했다. 미실현이익 과세 문제, 실업자, 사별 배우자, 고령층 등 저소득 계층에게 소득 대비 부담이 과도하게 돌아가는 역진성 문제, 지역별 부동산 평가 편차에 대한 납세자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물론 매년 내는 고지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며 명칭을 재산요금(fastighetsavgift)으로 바꾸고 연간 납부액을 집값과 무관하게 상한선(현재 기준 약 150만~160만 원 안팎)으로 꽉 묶어버렸다.
5억짜리 집이든 50억짜리 대저택이든 매년 내는 보유 비용의 상한이 사실상 같아짐으로써 자산가를 겨냥한 징벌적 보유 과세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이들 국가의 조세 철학은 명확하다. 자산을 쥐고 있을 때는 건드리지 않다가 벌었을 때(소득세)와 물려줄 때(상속세) 확실하게 걷는 것이 공정하다는 원칙이다.
반면 소득이 발생하지도 않은 사이버 머니에 매년 징벌적 고지서를 날리는 한국의 보유세 구조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주택 가격 목표를 정하고 수요 공급을 억제하면 “사회주의 국가에 가깝다.”고 말했지만, 미실현 이익에 대고 “선진국 수준인 3배로 올려야 한다.”고 군불을 때는 행위 자체가 가장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땅의 소유권 자체를 불허하는 중국조차도 헝다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 위축을 우려해 부동산세 확대를 사실상 보류해 둔 마당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탈을 쓴 변종 시스템의 고삐를 더 죄려 하고 있다.
진정성 없는 100분 쇼를 통해 보유세 인상의 밑밥을 까는 행위는 주권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면, 짜인 각본과 평범한 국민들의 등 뒤로 숨지 말고 반대 진영의 정통 경제학자들과 계급장 떼고 끝장 토론부터 벌여야 한다. 숫자를 속이고 단어를 주입하는 정치적 야바위로는 결코 시장의 냉정한 납세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