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G 웰스 생물학 전공에 선생님

2026년 08월 05일

《우주전쟁》의 결말 (강력 스포일러): 막강한 레이저 무기로 지구 군대를 전멸시키던 무적의 화성인들이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는 인간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구의 ‘박테리아(미생물)’ 때문이었습니다. 화성인들에게는 지구 미생물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는 이 결말은, 생물학자만이 낼 수 있었던 가장 과학적이고 완벽한 반전이었습니다.

H. G. 웰스의 《생물학 교과서 (Text-book of Biology, 1893)》는 그가 대문호나 SF 소설가가 아닌 ‘생물학자이자 과학 선생님’으로 살았던 시절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학습 교재를 넘어, 웰스의 문학적 상상력에 과학적 뼈대를 제공한 아주 특별한 저작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몇 가지로 나누어 들려드릴게요.

1. 웰스의 작가 데뷔를 이끈 ‘첫 책’

놀랍게도 H. G. 웰스가 세상에 처음으로 펴낸 단행본 저작은 SF 소설이 아니라 이 생물학 교과서였습니다. 당시 그는 ‘대학 통신 대학(University Correspondence College)’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던 강사였는데, 학생들이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마땅한 교재가 없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출간했습니다. 이 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웰스는 난생처음으로 넉넉한 인세 수입을 얻었고, 이 자금은 훗날 그가 전업 작가로 전향하는 든든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2. 해부학 실습과 세밀한 일러스트레이션

이 교과서는 2권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 척추동물 편 (Vertebrata): 첫 장부터 토끼를 어떻게 해부하고 분석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시사항으로 시작합니다. 토끼의 소화계, 순환계, 골격계 등 척추동물의 신체 구조를 자세히 다룹니다.

2권 무척추동물 및 식물 편 (Invertebrates and Plants):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부터 지렁이, 개구리 등에 이르는 생물들의 해부도와 세포 구조를 다루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해부도와 장기 구조, 세포와 신경망 그림은 웰스가 현미경으로 직접 관찰하고 정밀하게 펜으로 스케치한 것입니다.

3. 유머 감각과 재미있는 비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였지만 웰스 특유의 위트도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웰스의 2번째 부인이 된 에이미 캐서린 로빈스(Amy Catherine Robbins)가 당시 그의 생물학 학생이었는데, 그녀가 소장했던 책의 여백에는 “웰스(나)를 거대한 토끼가 해부하고 있는” 재미있는 캐리커처를 작가 본인이 직접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4. 이 교과서가 SF 소설에 미친 영향

웰스는 이 책을 집필하며 생명체가 환경에 맞춰 어떻게 진화하고 신체 구조가 적응하는지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훗날 집필한 불후의 명작 《타임머신》, 《모로 박사의 섬》입니다. 동물의 신체 구조를 인위적으로 변형하는 《모로 박사의 섬》의 기괴한 설정들은 바로 이 교과서를 그리며 뼈저리게 익힌 해부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 현대적인 의의

이 교과서는 워낙 인기가 좋아서 출간 이후 30년 넘게 절판되지 않고 계속 인쇄되었으며, 이후 여러 생물학자들에 의해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한 천재가 어떻게 현대 장르 문학의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 그 과학적 뿌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료입니다.


생물학 선생님 웰스의 흥미로운 비화

최초의 히트작은 소설이 아닌 ‘교과서’

교사 시절, 그는 시중에 아이들이 보기 편한 제대로 된 생물학 교재가 없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1893년, 자신이 직접 글을 쓰고 정밀한 세포·골격 그림까지 그려서 《생물학 교과서(Text-book of Biology)》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이 전국의 학교와 학원가에서 부교재로 엄청나게 팔리면서 웰스는 난생처음 큰돈을 만지게 됩니다.

각혈과 투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퇴직

그는 교사로서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안타깝게도 건강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원래 폐와 신장이 좋지 않았던 그는 수업 도중 피를 토하며(각혈) 쓰러지게 됩니다. 의사로부터 “더 이상 교단에 서서 말을 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은 그는 결국 정들었던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 위에서 시작된 ‘글쟁이’의 삶

몸을 움직이거나 서서 말을 할 수 없게 된 웰스는 침대에 누워 생활하며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앞서 쓴 생물학 교과서의 인쇄 수입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해 주던 버릇을 살려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탄생한 그의 소설 데뷔작이 바로 1895년의 《타임머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