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이 힘든 사람, 아티클 세줄소설
거절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의 요구를 받는 순간 머릿속에서 거절의 이유부터 정리하려 든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의 무리한 부탁을 받는 순간 내 머릿속은 언제나 분주해졌다.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할 정당한 핑계와 논리를 찾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거절의 이유가 길어질수록 내 목소리는 작아졌고 상대는 그 말의 틈새를 파고들어 다시 말을 얹으며 나를 흔들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설명이 부족해서 거절이 실패한다고 믿었던 긴 시간의 끝에서 나는 이제야 겨우 깨닫는다. 거절은 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그 자리에서 즉시 답하지어도 된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무례한 요구 뒤에는 늘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숨어 있었다. 그 압박에 휘말려 뱉어낸 즉흥적인 승낙은 언제나 후회를 남겼다. 이제는 우선 확인해보고 나중에 답을 주겠다며 한 걸음 물러서서 숨을 고른다. 시간을 버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습관처럼 쓰던 미안하다는 말도 서랍 깊숙이 집어넣었다. 돌이켜보면 그 불필요한 사과는 상대에게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인상을 주었고 상대는 그 미안함을 나의 약점으로 읽어냈다. 이제는 청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되 이번에는 어렵다는 사실만 담백하게 전달한다. 감정의 뉘앙스를 걷어내고 사실만 전할 때 내 거절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마음이 불편해서 서둘러 대안을 내밀던 버릇도 고쳤다. 그것이 오히려 거절의 선명함을 흐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는 그 대안을 또 다른 흥정의 시작으로 삼았고 나는 다시 늪에 빠지곤 했다. 이제는 거절은 거절대로 명확히 끝맺는다. 상대가 말을 바꿔 다시 요구해 올 때도 더 이상 새로운 논리를 만들지 않고 처음의 거절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말을 바꿀수록 오해가 생기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면 내 뜻이 흐려지지 않고 그대로 전달된다.
결국 거절이 힘들었던 것은 그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거절함으로 인해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야말로 내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오래도록 지불해 온 비싼 착한 사람의 비용이 지닌 실체였다. 이제 그 비용을 지불하는 일은 그만두기 지로 했다. 단호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나를 지키는 법을 채워 나가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