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라레, 세줄소설 트위터
누군가의 사토라레
사토라레들은 참 기묘한 운명을 타고났다. 자신의 모든 속마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스피커처럼 생중계된다. 정작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진심을 들으며 당황하면서도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철저하게 모른 척 연기해 준다. 심지어 국가 차원의 특별관리위원회가 조직되어 그의 일상을 비밀리에 보호하기도 한다. 황당한 판타지 같지만 문득 거울을 보거나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서 있을 때 엄습하는 기분이 있다. 어쩌면 우리도 나만 모르는 사토라레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우리는 완벽한 비밀의 방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의 주파수는 생각보다 자주 흘러나간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의 우리는 모두 서툰 사토라레였다. 교실에서 남몰래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나만 빼고 온 반 아이들이 그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억지로 밀어 올린 입꼬리와 미세하게 떨리던 눈빛이 내 마음을 생중계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망치고 속상해서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애써 괜찮은 척 고개를 들어도 붉어진 눈시울과 굳어버린 손끝의 움직임은 내 슬픔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속 세상으로 넘어가면 내 마음은 더 노골적으로 중계된다. 요즘에는 알고리즘이 현실판 특별관리위원회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고민이나 최근에 부쩍 커진 관심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피드에 추천 영상으로 뜬다. 우리가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검색창에 끄적인 단어들과 무의식적으로 머물렀던 흔적들이 온라인 공간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긴 탓이다. 화면을 볼 때마다 내 머릿속을 들킨 것 같아 소름이 돋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완벽히 숨겼다고 믿지만 디지털 세상은 이미 다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이 부서지지 않고 안전한 이유는 우리 주위에 다정한 특별관리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툰 진심을 들켰을 때 슬쩍 시선을 돌려주는 친구의 배려가 대표적이다. 학창 시절 시험을 치르고 울적해하는 나를 보고도 왜 그러냐고 꼬치꼬치 캐묻지 않던 짝꿍의 침묵도 그렇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매점에 뛰어가 초코우유 하나를 내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가던 다정한 친구들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기꺼이 눈감아주는 현실판 사토라레 보호법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의 파편들이 세상에 퍼져나가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서툰 속마음을 눈치껏 읽어낸다. 그리고 다시 눈치껏 그 마음을 덮어주며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서로를 모른 척 안아주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평온하게 살아가는 다정한 사토라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