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 세줄소설 아티클
사소함이라는 무게
살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지독하게 억울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있다. 밤을 새워가며 온 마음을 쏟아부었건만 아주 사소한 꼬투리 하나 때문에 모든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때가 그렇다. 그럴 때면 우리는 겨우 이런 작은 일 때문에 전체를 평가하느냐며 섭섭함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의 세계는 우리의 거친 숨소리와 눈물겨운 과정에 그리 너그럽지 않다. 오히려 낮게 읊조리듯 우리에게 조용히 타이른다. 억울해하지 마라, 사소한 거라도 조심해야 하는 게 프로라고.
문득 1986년의 겨울을 떠올려 본다. 우주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던 챌린저호가 고작 73초 만에 푸른 하늘에서 분해되던 그 순간을 말이다. 인류 최고의 기술력과 수조 원의 예산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의 밤샘이 녹아든 우주선을 추락시킨 것은 거대한 엔진 결함이 아니었다. 추운 날씨에 살짝 굳어버린 고작 몇 밀리미터 두께에 원화로 약 8천 원 정도 하는 사소한 고무 패킹 하나였다. 이 정도 추위쯤은 버티겠지 했던 사소한 방심은 결국 거대한 비극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동네의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가 실망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방장의 요리 실력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정성껏 만든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식탁 위에 놓인 투명한 유리잔에서 희끗희끗한 물때 자국을 발견했을 때 손님은 그 식당의 모든 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음식의 맛과는 전혀 무관한 유리잔 한 개의 부주의라는 사소한 균열 때문에, 주방 뒤편에서 수십 년간 땀 흘려 쌓아 올린 명성과 맛의 성벽이 단숨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일터는 철저한 이익집단이자 조직이다. 조직은 감정을 교류하는 친목 단체가 아니며, 이익집단은 과정의 눈물겨움을 보상해 주지 않는다. 오직 계약된 결과와 그 결과가 가져오는 이익으로만 생존하는 냉혹한 생태계다. 손님이 유리잔 얼룩 하나에 식당을 외면하듯, 시장과 조직은 프로의 사소한 틈을 신뢰의 붕괴로 받아들인다. 내가 아무리 밤을 새웠든 남모를 사정이 있었든, 이익을 내야 하는 조직의 관점에서 사소한 실수는 그저 통제실패이자 리스크일 뿐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사소함이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의 존폐와 신뢰의 전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예리한 칼날이다.
그래서 진짜 프로들은 일터에서 마주하는 작은 순간마다 스스로의 옷깃을 여민다. 업무 마감 직전 남의 탓을 하며 시간이 없어서 데이터를 검토하지 못했다고 억울해하는 이와 마지막 크로스 체크를 놓친 내 불찰이라며 즉시 대안을 찾는 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누군가와의 소통이 어긋났을 때도 상대방이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보다 말 한마디도 서면으로 다시 확인하지 못한 내 미숙함을 먼저 돌아보는 이가 결국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달콤한 덫과 같다. 내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나 타인 때문이라며 나를 위로해 주지만 결국 나를 제자리에 주저앉히기 때문이다. 사소한 부분까지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통제하려는 태도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구속이 아니라 내 노력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패다.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놓친 아주 작은 디테일을 찾아 가만히 들여다볼 일이다. 그 사소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메워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아마추어의 투정을 벗고 정교한 프로의 품격 중 하나를 갖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