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내비게이션에 서울의 동네 이름을 입력하다 보면 문득 거대한 사파리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예술의전당 뒷산에는 소가 누워 자고 있고, 봉천동과 사당동을 잇는 가파른 고갯길과 강서구 화곡동의 나지막한 동산에는 까치들이 날아다니며, 양천구 들판에는 곰이 뒹굴고 있다. 광화문 뒷골목에 이르면 뜬금없이 말(馬)들이 뛰어다닌다. 우면산, 까치고개와 까치산, 곰달래, 피맛골(피마골, 피마길). 이름만 들으면 영락없는 ‘동물의 왕국’이다.
하지만 이 동물들의 탈을 한 꺼풀만 살짝 벗겨내면,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인간의 엉뚱함과 짠내 나는 생존 투쟁, 그리고 정직한 자연이 버무려진 유쾌한 반전 드라마들이다. 지도의 동물들은 어떤 곳에서는 우리 옛말이 문자의 그물에 걸려들며 생긴 착시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선조들이 마주했던 진짜 생태계의 목격담이다.
가장 먼저 나를 미소 짓게 만든 것은 양천구 신월동에 남아있는 ‘곰달래’라는 다정한 이름이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엔 쑥과 달래를 먹으며 울부짖는 아기 곰의 슬픈 전설 같은 것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하지만 지명학이라는 이성의 렌즈를 들이대자 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신라 시대 고대 한국어에서 ‘검’이나 ‘고마’는 동물이 아니라 ‘크고, 넓고, 신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최고급 수식어였다. 즉, 곰달래의 진짜 얼굴은 ‘크고 넓게 탁 트인 들판에 흐르는 정겨운 냇가’였다. 문자가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이 넓은 벌판을 보며 “와, 참 고운 곰(넓은) 들판이네” 하고 부르던 소리가 세월을 타고 흐르다 엉뚱하게 곰(Bear)의 이름표를 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자화의 착시는 서초구의 ‘우면산’과 봉천동에서 사당동으로 넘어가는 남부순환로의 ‘까치고개’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소 ‘우(牛)’ 자에 잠잘 ‘면(眠)’ 자를 쓰는 우면산은 흔히 ‘늙은 소가 배를 깔고 누워 잠을 자는 형상’이라 설명되지만, 이 역시 사후에 지어진 그럴듯한 뻥이다. 진짜 본질은 ‘우뫼’ 혹은 ‘윗뫼’라는 정직한 이름에 있었다. 옛 민초들이 마을 ‘위에 있는 산’이라 부르던 투박한 우리말이 한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발음이 같은 소 ‘우(牛)’ 자가 끌려왔고, 여기에 풍수지리설 서사가 덧칠해진 것이다.
옆 동네 ‘까치고개’ 역시 날아다니는 새와는 인연이 멀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큰 고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지형을 부를 때, ‘아우’나 ‘작다’라는 뜻의 고어인 ‘아치’를 붙여 ‘아치고개(가추개)’라 불렀다. 설날 전날을 ‘작은 설’이라는 뜻으로 ‘아치설(까치설)’이라 불렀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아치’가 세월이 흐르며 발음이 강해져 ‘까치’가 되었고, 후대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까치 ‘작(鵲)’ 자를 써서 지도에 박아 넣었다. 깃털을 날리던 새는 간데없고, 사실은 관악산 줄기 아래 숨어 있던 ‘작고 정겨운 지름길’이 그 본질이었던 셈이다.
반면, 강서구 화곡동의 ‘까치산’은 이 유쾌한 착시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진짜 팩트’의 땅이다. 화곡(禾谷)이라는 이름처럼 과거 이곳은 골짜기마다 벼가 익어가던 풍요로운 논밭이자 넓은 언덕지대였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숲이 아늑하니, 수많은 까치와 참새들이 날아와 평화롭게 둥지를 틀고 노래하던 실제 까치들의 천국이자 놀이터였던 것이다. 누군가의 언어적 왜곡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매일 눈으로 목격했던 정직한 생태계의 관찰 일지가 그대로 산의 이름표가 된 셈이다. 이처럼 어떤 곳은 옛말을 잃어버려 억울한 배신을 당하고, 어떤 곳은 자연의 풍경을 정직하게 물려받았다.
그러나 내 발길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은 것은 종로의 ‘피맛골(피마골, 피마길)’이다. 한 잔의 막걸리와 생선구이 냄새로 기억되는 이 좁고 복잡한 골짜기는, 그 이름들을 가만히 늘어놓고 보면 허탈할 정도로 인간적인 짠내가 진동한다. ‘피할 피(避)’에 ‘말 마(馬)’. 이곳은 말이 살던 목장도, 애초부터 고기가 맛있던 동네도 아니다. 조선 시대 종로 큰길은 고관대작들의 가마와 말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던 권력의 런웨이였다. 높으신 분들이 지나갈 때마다 길 가던 백성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해야 했다. 바쁜 출근길이나 피곤한 퇴근길에 그 번거로움과 신분제의 압박을 매번 감당하기란 얼마나 귀찮고 서글픈 일이었을까. 결국 참다못한 조선의 꾀돌이 서민들은 “에라, 그냥 뒷골목으로 돌아서 가자!”라며 큰길 옆 좁은 오솔길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피마길’과 ‘피마골’은 높으신 분들의 말발굽 소리를 피해 숨어든 서민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그 골목길 틈새로 국밥과 대포집이 채워지며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맛의 골목, ‘피맛골’로 진화했다. 말(馬)을 피하려다 인생의 맛(味)을 찾아버린 서민들의 유쾌한 반항이 이 이름의 변천사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는 셈이다.
지도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거대한 숨바꼭질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무심코 부르던 곰과 소, 새와 말의 가면을 벗겨낼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은, 이 땅을 정직하게 사랑하고, 직관적으로 바라보며, 때로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요리조리 살아남았던 진짜 ‘인간’들의 숨결이다. 동물의 이름으로 박제된 오래된 길들을 무심히 걷다 보면, 그 겉포장 뒤에 숨어 있던 선조들의 다정함과 애환이 맑은 냇물처럼 배어 나온다. 지도 위의 동물들은 허구가 아니라, 우리를 진짜 인간의 역사로 안내하는 가장 흥미로운 이정표다.